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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베토벤은 노년에 눈이 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라 노년에도 창작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전해 들은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다른 천재 음악가들과는 달리 어릴 때는 음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베토벤을 창고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창고 안에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55세 되던 해였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LA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였다. 당시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아 낮에도 학교에 가곤 했었다.   어느 토요일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구석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한 강의실에서 나는 기타 소리였다. 강의실을 들여다보니 젊은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고 있었고 기타 선생님에게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타 배우기가 시작됐다.   지금 내 나이가 86세이니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어언 31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기타 연주곡은 베사메무초다. 최근엔 ‘인생은 네 박자’라는 한국 대중가요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도 부른다. 매일 이 두 곡은 빠짐없이 연주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음악을  최소한 3곡 정도 더 연주하면서 노래한다. 하루에 최소 5곡 이상은 연주를 하고 노래도 하는 셈이다.   나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완전한 귀와 눈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들 베토벤 흉내 음악 소리

2024-09-10

[아름다운 우리말]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는 법

몇 년 전에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저에게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시는 전헌 선생님과 걸은 적이 있습니다. 걷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입니다. 특히나 좋은 분과 걷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날은 그래서 더 행복했습니다. 걷는 동안 삶이 더 밝아지고, 행복한 스스로를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정확히는 두 군데에서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큰 스피커로 쿵쿵 울려대는 신나는 음악이었고, 다른 쪽은 합창단이 부르는 고요한 노래였습니다. 합창단의 노래가 방해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저희의 발길은 합창단 쪽으로 향했습니다. 저희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합창단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합창 소리에 저마다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반대쪽의 음악 소리가 커질수록 합창의 소리는 더 작아졌습니다. 실제로도 더 작게 부르는 듯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더 귀 기울이며 아주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합창 소리를 잊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떤 노래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용하게 노래 부르던 그 모습은 아마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집니다. 거친 세상의 증거는 말소리가 커지는 겁니다. 자신의 주장이 맞는다고 하며 더 크게 말합니다. 소리 높여 말한다는 표현에서 소리가 감정을 북돋는 느낌을 받습니다. 친구와 대화에서도 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심지어 가족 간의 대화에서도 목소리는 커집니다. 그러다 보니 싸우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스스로는 싸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벌써 우리의 마음속은 싸움이 일어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할 때 소리를 치는 것은 두 사람이 이미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 우리 사이에 대해서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표현을 씁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다가간다는 의미입니다. 머리가 기울고, 어깨가 다가갑니다. 소리가 커지면 다가갈 리 없습니다. 거리를 두게 되죠. 당연히 귀 기울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리가 작고 부드러워야 귀를 기울입니다. 저는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를 사람들이 잊고 산다고 봅니다.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떠들어 대면 소음이 됩니다. 떠든다는 말도 소리가 ‘뜨고, 들려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라앉지 않은 겁니다. 차분하지 않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수다는 떤다고 합니다. 이 말도 재미있습니다. 떠드는 것보다는 귀여운 느낌이 있습니다.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떨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떨리는 것은 파동을 보입니다. 서로에게 감정이 전달되는 것이지요. 수다야말로 인간의 언어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다가 곧 위로이기도 합니다. 같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요. 떠는 정도는 괜찮은데 떠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삼가야 할 겁니다.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는 비법은 소리를 작게 내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수록 나에게 다가올 겁니다. 두 사람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내 말이 듣고 싶도록 내용을 충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기껏 들었는데 알맹이가 없으면 허무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도 저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꿈꿉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합창 소리 음악 소리 합창단 주변

2024-03-17

[독자 마당] 당신과 나

검은 머리의 키가 큰 남자 옆에 면사포를 쓴 아가씨가 다소곳이 서 있다. 55년 전 우리의 흑백 결혼 사진인데 아주 낯설어 보인다.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사진 속 모습은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남들의 결혼식 사진 같다.     사진 속 부부와 지금의 우리를 보니 그 긴 세월이 한순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고 백발의 두 노인만 남았다. 하지만 검은 색이 섞이지 않은 남편의 백발은 아주 보기 좋다. 성경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라고 했는데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고 자녀를 열심히 키운 자에게 보내준 면류관 같다.     젊음의 건강, 박력, 투지는 사라졌지만 남편 특유의 부드러움과 노년의 중후함 그리고 내적 충만이 가득한 언어는 우리의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해 주고 있다.  가끔씩 노년의 허무함을 승화시킨 농담을 던질 때는 함께 웃는다. 창가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모습은 어느 외국 영화에 나오는 노년의 배우처럼 보인다. 아주 멋지다.   젊은 날의 곧았던 몸이 굽어 ‘이제는 노인이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거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방해하지 않으려 책상에 앉아 나는 글을 쓴다. ‘당신과 나’라는 제목의 시다.     “처음 만나던 날/ 손끝이 닿을까 떨어져 걸었지요// 어느 날 보니/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시도 떨어지기 싫어/ 한 지붕 아래로 들어와 버렸지요// 세월 흘러/ 당신 닮은 딸, 나 닮은 아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 시책 어기고// 덤으로 딸 하나 더 낳았지요// 북적이며 살다가/ 큰딸 짝 찾아 떠나고 아들도 짝 만들어 떠나고// 막내딸마저 우리 곁을 떠나고// 다시 돌아보니 둘만 남아/ 가만히 손을 잡아 봅니다/ 넘어질까 무서워 손 꼭잡고 걸어갑니다.” 정현숙·LA독자 마당 음악 소리 외국 영화 창가 흔들의자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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